· 대상: 초등학교 3학년 / 김가빈 / 쉼표를 파는 가게
골목 끝에는 이상한 가게가 하나 있었다.
간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쉼표를 팝니다.
처음 본 사람들은 모두 웃었다.
"쉼표를 어떻게 팔아?"
"문방구인가?"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가게 앞은 언제나 조용했다.
누구도 크게 떠들지 않았고,
누구도 서두르지 않았다.
마치 시간이 그 가게 앞에서만 천천히 걷는 것 같았다.
학교가 끝난 어느 날,
민우는 우연히 그 가게 문을 열었다.
가게 안에는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
대신 벽마다 작은 유리병들이 가득 놓여 있었다.
병마다 작은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쉼표 하나.
쉼표 둘.
쉼표 셋.
민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할아버지.
쉼표가 어디 있어요?"
주인은 웃으며 가장 작은 병 하나를 꺼냈다.
"이 안에 있단다."
민우는 병을 흔들어 보았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빈 병이잖아요."
"정말 그렇게 보이니?"
그때 문이 열리더니
정장을 입은 아저씨가 허둥지둥 들어왔다.
"쉼표 하나 주세요."
할아버지는 병 하나를 건네주었다.
아저씨가 병뚜껑을 열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아저씨 손목시계 초침이
잠깐 멈추었다.
그 사이
휴대전화가 울렸지만 받지 않았다.
밖으로 나간 아저씨는
횡단보도 앞에서
처음 보는 아이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처음으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신호가 바뀌기 전,
아이도 활짝 웃었다.
초침은 다시 움직였다.
모든 것은 단 몇 초였다.
하지만 아저씨 얼굴은
아까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며칠 뒤에는
한 아주머니가 찾아왔다.
"쉼표 두 개 주세요."
병을 연 순간
아주머니는 시장으로 뛰어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
아무 말 없이
잠든 아기의 머리카락을 한참 쓰다듬었다.
그날 저녁,
아기는 엄마 품에서
세상에서 가장 오래 웃었다.
민우는 궁금해졌다.
"쉼표는 어떻게 만드는 거예요?"
할아버지는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람들이 잃어버린 걸 모으는 거란다."
"뭘 잃어버렸는데요?"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간.
꽃향기를 맡는 시간.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는 시간.
미안하다고 말하기 전 잠깐 멈추는 시간."
민우는 벽 가득 놓인 병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 안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놓치고 지나간 시간이
조용히 담겨 있었다.
그날부터 민우는 매일 가게에 갔다.
하지만 쉼표를 사지는 않았다.
그저 사람들을 구경했다.
병 하나를 열고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얼굴이었다.
조금 느려졌고,
조금 부드러워졌고,
조금 더 사람 같아져 있었다.
어느 겨울날.
민우는 용돈을 꼭 쥔 채 가게로 달려갔다.
"쉼표 하나 주세요."
할아버지는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았다.
"누구에게 줄 거니?"
"엄마요."
"왜?"
민우는 고개를 숙였다.
"엄마가 요즘 제 얼굴을 잘 못 봐요."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가장 작은 병 하나를 내밀었다.
민우는 용돈을 꺼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손을 저었다.
"쉼표는 돈으로 사는 게 아니란다."
"그럼요?"
"네가 먼저 만들면 되는 거야."
"어떻게요?"
할아버지는 웃으며 대답했다.
"오늘 저녁,
엄마가 집에 오시면
휴대전화를 내려놓게 해 드려 보렴."
그날 민우는
식탁 위에 작은 종이 하나를 올려두었다.
종이에는 쉼표 하나만
조용히 그려져 있었다.
,
엄마는 피곤한 얼굴로 집에 들어왔다.
가방을 내려놓고,
휴대전화를 집어 들려다가
종이를 발견했다.
"이게 뭐야?"
민우는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쉼표 하는 날."
엄마는 처음에는 웃었다.
그러다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았다.
두 사람은 오랜만에
천천히 밥을 먹었다.
학교 이야기.
친구 이야기.
하늘 이야기.
별것 아닌 이야기들이
식탁 위를 천천히 걸어 다녔다.
그날 밤,
엄마는 민우를 꼭 안아 주며 말했다.
"오늘 하루가 왜 이렇게 길었지?"
민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속으로만 생각했다.
시간은 늘 같은 속도로 흘렀다.
우리가 너무 빨리 지나가고 있었을 뿐이었다.
오은령 작가 심사평
<쉼표를 파는 가게>는 바쁘게 살아가느라 놓치고 있는 소중한 순간들을 따뜻하게 돌아보게 하는 작품입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쉼표’라는 하나의 소재로 이야기 전체를 엮어낸 힘입니다. 좋은 생각을 떠올리는 것도 어렵지만, 그 생각을 한 편의 이야기로 설득력 있게 완성하는 일은 훨씬 더 어려우니까요. 빈 유리병 속에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간, 꽃향기를 맡는 시간처럼 누군가 미처 누리지 못하고 지나간 순간들이 담겨 있다는 설정도 무척 인상적입니다. 그 짧은 순간을 쉼표 삼아 사람들이 조금 느려지고, 조금 부드러워지는 장면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 마음에도 작은 쉼표 하나가 찍히는 듯합니다.
다정한 반전도 반가웠어요. 쉼표의 의미를 알아가던 민우는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것을 사 오는 대신, 직접 작은 쉼표 하나를 그려 엄마와 함께할 시간을 만들어 내지요. 어린이다운 순수함과 사랑, 그리고 이 작품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주제가 맑고 또렷하게 담긴 장면이었습니다.
좋은 이야기는 다 읽고 난 뒤에도 우리 마음속에서 한동안 계속됩니다. <쉼표를 파는 가게>가 건네준 쉼표도 그럴 것 같습니다. 잠시 걸음을 늦추고, 곁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고, 눈여겨 보지 않았던 것을 발견하게 해 주니까요.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선물해 준 작가님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앞으로도 세상의 작고 소중한 순간들을 자신만의 따뜻한 눈으로 기록하는 작가로 자라나기를 마음 깊이 응원합니다.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리고 참! 혹시, 마지막 두 문장을 (아마도 3학년일) 민우가 또래의 언어로 좀 더 쉽게 말한다면, 어떤 문장이 완성되었을까요? 나중에 작가님을 만나게 된다면 꼭 한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 최수우작: 중학교 3학년 /이윤아 / 구전독서(口傳讀書)
책방의 문을 열자 공중에 먼지가 폴폴 날렸다. 동시에 문에서는 낡은 경고문이 떨어졌다. 보나 마나 ‘비효율적 활동 금기’ 명령과 관련된 경고일 것이다. 내 작업과 관련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상부에서 보낸 메일이 떠올랐다.
‘…책은 재생자원부에 보내거나, 필요시 소거해도 좋다.’
“이 책들을 언제 다 소거하나.”
나는 책장으로 다가가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교복을 입은 소년이 그려진 책이었다. 아무렇게나 책을 펼쳤는데,
“이게… 뭐야?”
난데없이 책에서 표지에 그려진 소년이 튀어나왔다. 꿈이라기엔 소년은 생생히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소년은 내 가슴팍에 달린 명찰을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또 공무원이야?”
내가 영문도 모른 채 서 있자 소년이 말했다.
“무슨 말 하려는지 감이 오네. 네, 저 책에서 나왔습니다. 반이라고 하구요. 잠깐 내 얘기 좀 들어볼래요?”
반은 내가 입을 열 새도 없이 속사포처럼 내뱉었다. 나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으나, 책을 읽는 것도 아니니 일단 들어보기로 했다.
“…도서부로서 예술 금기를 참을 수 없으니 도와달라고? 아니-”
반의 이야기를 들은 후 빠르게 거절하려는데, 반이 책장에서 책을 꺼냈다.
“일단 선생님부터 책에 재미를 좀 아셔야겠죠? 독서 금기니 뭐니 할 거면 관두시고. 누구한테는 생존이 달린 문제라서.”
이번에는 책에서 반 또래의 소녀가 나타났다. 옷차림을 보아 일제 강점기 즈음 같았다. 소녀가 내 명찰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전 연화라고 합니다. 지금부터 제 이야기를 해 드릴게요.”
나는 어이가 없었으나 곧 연화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이야기는 당시 상황을 생생히 반영하고 있었다. 이 소설은 일제강점기 당시 국민들의 고난을 담은 소설이었다. 하나의 역사 수업 같은 시간이 흐르고, 광복을 맞이하며 연화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연화는 고개를 한번 숙이더니 책 속으로 사라졌다.
반이 내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공무원 선생님, 중앙에서 독서를 금기시한 이유가 뭐죠?”
“얻는 게 없는 비효율적인 활동….”
반이 미소 지었다.
“근데 연화 얘기는 어땠어요?”
내가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과거 시대 상황을 반영해서 교육적이었어.”
만족스럽게 웃던 반이 진지하게 말했다.
“선생님, 우린 당신이 뭐 제도를 바꾸길 바라진 않아요. 자신들 까내리는 글 나올까봐 사람들 시야를 차단해버리는 인간들이 바뀔 리도 없고.”
반이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냥 우리를 즐겨줄 사람만 있으면 돼요. 읽는 사람이 없으면, 우리도 그냥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니까. 어때요, 독자가 되어 줄래요?”
나는 잠시 고민했다. 직급을 내팽개치고 ‘범법 활동’을 할 것인가? 연화의 이야기를 들어봤을 때, 독서는 비효율적인 활동 같지 않았다. 어쩌면 중앙에서 숨기는 게 있을지도.
“…그래.”
내가 반의 손을 붙잡았다. 반이 안도한 표정으로 나를 이끌었다.
“좋아, 다른 책도 보러 가요!”
그 이후 나는 반과 함께 다양한 책들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은 책 속 인물을 만나고 또 어느 날은 근처 마을로 가서 책을 읽어주기도 했다. 지방이라 규제가 약한지, 그곳은 어른들도 책에 관심을 가졌다. 그렇게 책을 하나씩 볼수록 중앙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져갔다. 그때 좀 더 주의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다는 놀라움에 워치에서 붉은 빛이 깜빡이는 것을 보지 못했다.
건물을 삼킨 집채만한 불길. 그것이 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었다. 내 손목에는 수갑이 채였고 책방은 타들어갔다. 중앙에서 나온 고위 위원이 말하길, 내가 범법 활동을 했으며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해 책방은 소각 처분을, 나는 기억 소거 선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곳에 온 첫날에 나라면 어땠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사형이나 다름 없었다. 반, 연화, 그 외에도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불길 한번에 스러져갔다. 그 후로는 기억이 흐릿했다. 그러다 어느새, 기억 소거 당일이 되어있었다. 내 앞에서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이 차트를 보며 물었다.
“본인은 자신이 저지른 짓을 후회합니까?”
내가 피식 웃었다.
“전혀. 어쩌면, ‘*혹시 효율적인 삶이라는 건 늘 똑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죽기 전에 기억할 만한 멋진 날이 몇 개 되지 않는 삶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가운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작해.”
검은 재로 뒤덮인 책방 터에 어린아이가 발을 들였다. 두리번거리던 아이는 재에 묻힌 책을 주워들었다. 때마침 하얀 나비 사이에서 날아오른 노란 나비가 책방 터를 가로질러 마을로 날아갔다.
*김언수-<캐비닛>
길유정 작가 심사평
독서의 가치는 누구나 익히 아는 것이죠. 그럼에도 책보다 핸드폰에 손이 더 많이 가는 것은 효율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바쁜 현대인의 숙명..이라고 변명해 봅니다.
이렇게 공감 어린 주제를 꼭 붙들고 작가는 낯선 세계로 우릴 초대합니다.
국가가 ‘비효율적 활동 금지’를 선포한 사회. 정치적 의도가 다분한 이 정책 덕에 사람들은 핸드폰과 책 중 뭘 집어들지 갈등할 필요 없는 효율적인 세상을 맞이하죠. 그래서..모두 행복했을까요?! 이 작품을 읽으며 저도 ‘반’과 만나고 싶었습니다. 이런저런 책들을 읽으며 천천히 이야기 나누고 싶어졌습니다. 책장에 꽂힌 책들 속에서 내미는 무수한 ‘반’들의 손. 그걸 내내 모른 척 하고 있었던 건 역시 비효율적 활동을 자체 검열하고 있는 내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독서에 관한 이야기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어떤 태도로 삶을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화두를 던져주는 고마운 작품이습니다.
인상적인 문장들이 많아 읽을 때마다 우러나는 맛이 있었고
전체적인 구성도 불필요한 부분 없이 간결하여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분량의 압박이 없었더라면) 주인공이 반과 함께 책을 읽으며 독서의 기쁨을 느끼게 되는 과정이 더 구체적으로 묘사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랬더라면 이후 정부에 발각되어 책과 기억이 모두 소거되는 부분이 더 극적으로 큰 울림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독서 욕구를 일깨워 준 작가에게 고마운 마음 전하며 수상을 축하합니다!
· 대상: 초등학교 3학년 / 김가빈 / 쉼표를 파는 가게
골목 끝에는 이상한 가게가 하나 있었다.
간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쉼표를 팝니다.
처음 본 사람들은 모두 웃었다.
"쉼표를 어떻게 팔아?"
"문방구인가?"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가게 앞은 언제나 조용했다.
누구도 크게 떠들지 않았고,
누구도 서두르지 않았다.
마치 시간이 그 가게 앞에서만 천천히 걷는 것 같았다.
학교가 끝난 어느 날,
민우는 우연히 그 가게 문을 열었다.
가게 안에는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
대신 벽마다 작은 유리병들이 가득 놓여 있었다.
병마다 작은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쉼표 하나.
쉼표 둘.
쉼표 셋.
민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할아버지.
쉼표가 어디 있어요?"
주인은 웃으며 가장 작은 병 하나를 꺼냈다.
"이 안에 있단다."
민우는 병을 흔들어 보았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빈 병이잖아요."
"정말 그렇게 보이니?"
그때 문이 열리더니
정장을 입은 아저씨가 허둥지둥 들어왔다.
"쉼표 하나 주세요."
할아버지는 병 하나를 건네주었다.
아저씨가 병뚜껑을 열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아저씨 손목시계 초침이
잠깐 멈추었다.
그 사이
휴대전화가 울렸지만 받지 않았다.
밖으로 나간 아저씨는
횡단보도 앞에서
처음 보는 아이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처음으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신호가 바뀌기 전,
아이도 활짝 웃었다.
초침은 다시 움직였다.
모든 것은 단 몇 초였다.
하지만 아저씨 얼굴은
아까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며칠 뒤에는
한 아주머니가 찾아왔다.
"쉼표 두 개 주세요."
병을 연 순간
아주머니는 시장으로 뛰어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
아무 말 없이
잠든 아기의 머리카락을 한참 쓰다듬었다.
그날 저녁,
아기는 엄마 품에서
세상에서 가장 오래 웃었다.
민우는 궁금해졌다.
"쉼표는 어떻게 만드는 거예요?"
할아버지는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람들이 잃어버린 걸 모으는 거란다."
"뭘 잃어버렸는데요?"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간.
꽃향기를 맡는 시간.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는 시간.
미안하다고 말하기 전 잠깐 멈추는 시간."
민우는 벽 가득 놓인 병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 안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놓치고 지나간 시간이
조용히 담겨 있었다.
그날부터 민우는 매일 가게에 갔다.
하지만 쉼표를 사지는 않았다.
그저 사람들을 구경했다.
병 하나를 열고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얼굴이었다.
조금 느려졌고,
조금 부드러워졌고,
조금 더 사람 같아져 있었다.
어느 겨울날.
민우는 용돈을 꼭 쥔 채 가게로 달려갔다.
"쉼표 하나 주세요."
할아버지는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았다.
"누구에게 줄 거니?"
"엄마요."
"왜?"
민우는 고개를 숙였다.
"엄마가 요즘 제 얼굴을 잘 못 봐요."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가장 작은 병 하나를 내밀었다.
민우는 용돈을 꺼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손을 저었다.
"쉼표는 돈으로 사는 게 아니란다."
"그럼요?"
"네가 먼저 만들면 되는 거야."
"어떻게요?"
할아버지는 웃으며 대답했다.
"오늘 저녁,
엄마가 집에 오시면
휴대전화를 내려놓게 해 드려 보렴."
그날 민우는
식탁 위에 작은 종이 하나를 올려두었다.
종이에는 쉼표 하나만
조용히 그려져 있었다.
,
엄마는 피곤한 얼굴로 집에 들어왔다.
가방을 내려놓고,
휴대전화를 집어 들려다가
종이를 발견했다.
"이게 뭐야?"
민우는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쉼표 하는 날."
엄마는 처음에는 웃었다.
그러다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았다.
두 사람은 오랜만에
천천히 밥을 먹었다.
학교 이야기.
친구 이야기.
하늘 이야기.
별것 아닌 이야기들이
식탁 위를 천천히 걸어 다녔다.
그날 밤,
엄마는 민우를 꼭 안아 주며 말했다.
"오늘 하루가 왜 이렇게 길었지?"
민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속으로만 생각했다.
시간은 늘 같은 속도로 흘렀다.
우리가 너무 빨리 지나가고 있었을 뿐이었다.
오은령 작가 심사평
<쉼표를 파는 가게>는 바쁘게 살아가느라 놓치고 있는 소중한 순간들을 따뜻하게 돌아보게 하는 작품입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쉼표’라는 하나의 소재로 이야기 전체를 엮어낸 힘입니다. 좋은 생각을 떠올리는 것도 어렵지만, 그 생각을 한 편의 이야기로 설득력 있게 완성하는 일은 훨씬 더 어려우니까요. 빈 유리병 속에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간, 꽃향기를 맡는 시간처럼 누군가 미처 누리지 못하고 지나간 순간들이 담겨 있다는 설정도 무척 인상적입니다. 그 짧은 순간을 쉼표 삼아 사람들이 조금 느려지고, 조금 부드러워지는 장면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 마음에도 작은 쉼표 하나가 찍히는 듯합니다.
다정한 반전도 반가웠어요. 쉼표의 의미를 알아가던 민우는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것을 사 오는 대신, 직접 작은 쉼표 하나를 그려 엄마와 함께할 시간을 만들어 내지요. 어린이다운 순수함과 사랑, 그리고 이 작품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주제가 맑고 또렷하게 담긴 장면이었습니다.
좋은 이야기는 다 읽고 난 뒤에도 우리 마음속에서 한동안 계속됩니다. <쉼표를 파는 가게>가 건네준 쉼표도 그럴 것 같습니다. 잠시 걸음을 늦추고, 곁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고, 눈여겨 보지 않았던 것을 발견하게 해 주니까요.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선물해 준 작가님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앞으로도 세상의 작고 소중한 순간들을 자신만의 따뜻한 눈으로 기록하는 작가로 자라나기를 마음 깊이 응원합니다.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리고 참! 혹시, 마지막 두 문장을 (아마도 3학년일) 민우가 또래의 언어로 좀 더 쉽게 말한다면, 어떤 문장이 완성되었을까요? 나중에 작가님을 만나게 된다면 꼭 한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 최수우작: 중학교 3학년 /이윤아 / 구전독서(口傳讀書)
책방의 문을 열자 공중에 먼지가 폴폴 날렸다. 동시에 문에서는 낡은 경고문이 떨어졌다. 보나 마나 ‘비효율적 활동 금기’ 명령과 관련된 경고일 것이다. 내 작업과 관련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상부에서 보낸 메일이 떠올랐다.
‘…책은 재생자원부에 보내거나, 필요시 소거해도 좋다.’
“이 책들을 언제 다 소거하나.”
나는 책장으로 다가가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교복을 입은 소년이 그려진 책이었다. 아무렇게나 책을 펼쳤는데,
“이게… 뭐야?”
난데없이 책에서 표지에 그려진 소년이 튀어나왔다. 꿈이라기엔 소년은 생생히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소년은 내 가슴팍에 달린 명찰을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또 공무원이야?”
내가 영문도 모른 채 서 있자 소년이 말했다.
“무슨 말 하려는지 감이 오네. 네, 저 책에서 나왔습니다. 반이라고 하구요. 잠깐 내 얘기 좀 들어볼래요?”
반은 내가 입을 열 새도 없이 속사포처럼 내뱉었다. 나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으나, 책을 읽는 것도 아니니 일단 들어보기로 했다.
“…도서부로서 예술 금기를 참을 수 없으니 도와달라고? 아니-”
반의 이야기를 들은 후 빠르게 거절하려는데, 반이 책장에서 책을 꺼냈다.
“일단 선생님부터 책에 재미를 좀 아셔야겠죠? 독서 금기니 뭐니 할 거면 관두시고. 누구한테는 생존이 달린 문제라서.”
이번에는 책에서 반 또래의 소녀가 나타났다. 옷차림을 보아 일제 강점기 즈음 같았다. 소녀가 내 명찰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전 연화라고 합니다. 지금부터 제 이야기를 해 드릴게요.”
나는 어이가 없었으나 곧 연화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이야기는 당시 상황을 생생히 반영하고 있었다. 이 소설은 일제강점기 당시 국민들의 고난을 담은 소설이었다. 하나의 역사 수업 같은 시간이 흐르고, 광복을 맞이하며 연화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연화는 고개를 한번 숙이더니 책 속으로 사라졌다.
반이 내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공무원 선생님, 중앙에서 독서를 금기시한 이유가 뭐죠?”
“얻는 게 없는 비효율적인 활동….”
반이 미소 지었다.
“근데 연화 얘기는 어땠어요?”
내가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과거 시대 상황을 반영해서 교육적이었어.”
만족스럽게 웃던 반이 진지하게 말했다.
“선생님, 우린 당신이 뭐 제도를 바꾸길 바라진 않아요. 자신들 까내리는 글 나올까봐 사람들 시야를 차단해버리는 인간들이 바뀔 리도 없고.”
반이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냥 우리를 즐겨줄 사람만 있으면 돼요. 읽는 사람이 없으면, 우리도 그냥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니까. 어때요, 독자가 되어 줄래요?”
나는 잠시 고민했다. 직급을 내팽개치고 ‘범법 활동’을 할 것인가? 연화의 이야기를 들어봤을 때, 독서는 비효율적인 활동 같지 않았다. 어쩌면 중앙에서 숨기는 게 있을지도.
“…그래.”
내가 반의 손을 붙잡았다. 반이 안도한 표정으로 나를 이끌었다.
“좋아, 다른 책도 보러 가요!”
그 이후 나는 반과 함께 다양한 책들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은 책 속 인물을 만나고 또 어느 날은 근처 마을로 가서 책을 읽어주기도 했다. 지방이라 규제가 약한지, 그곳은 어른들도 책에 관심을 가졌다. 그렇게 책을 하나씩 볼수록 중앙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져갔다. 그때 좀 더 주의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다는 놀라움에 워치에서 붉은 빛이 깜빡이는 것을 보지 못했다.
건물을 삼킨 집채만한 불길. 그것이 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었다. 내 손목에는 수갑이 채였고 책방은 타들어갔다. 중앙에서 나온 고위 위원이 말하길, 내가 범법 활동을 했으며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해 책방은 소각 처분을, 나는 기억 소거 선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곳에 온 첫날에 나라면 어땠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사형이나 다름 없었다. 반, 연화, 그 외에도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불길 한번에 스러져갔다. 그 후로는 기억이 흐릿했다. 그러다 어느새, 기억 소거 당일이 되어있었다. 내 앞에서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이 차트를 보며 물었다.
“본인은 자신이 저지른 짓을 후회합니까?”
내가 피식 웃었다.
“전혀. 어쩌면, ‘*혹시 효율적인 삶이라는 건 늘 똑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죽기 전에 기억할 만한 멋진 날이 몇 개 되지 않는 삶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가운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작해.”
검은 재로 뒤덮인 책방 터에 어린아이가 발을 들였다. 두리번거리던 아이는 재에 묻힌 책을 주워들었다. 때마침 하얀 나비 사이에서 날아오른 노란 나비가 책방 터를 가로질러 마을로 날아갔다.
*김언수-<캐비닛>
길유정 작가 심사평
독서의 가치는 누구나 익히 아는 것이죠. 그럼에도 책보다 핸드폰에 손이 더 많이 가는 것은 효율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바쁜 현대인의 숙명..이라고 변명해 봅니다.
이렇게 공감 어린 주제를 꼭 붙들고 작가는 낯선 세계로 우릴 초대합니다.
국가가 ‘비효율적 활동 금지’를 선포한 사회. 정치적 의도가 다분한 이 정책 덕에 사람들은 핸드폰과 책 중 뭘 집어들지 갈등할 필요 없는 효율적인 세상을 맞이하죠. 그래서..모두 행복했을까요?! 이 작품을 읽으며 저도 ‘반’과 만나고 싶었습니다. 이런저런 책들을 읽으며 천천히 이야기 나누고 싶어졌습니다. 책장에 꽂힌 책들 속에서 내미는 무수한 ‘반’들의 손. 그걸 내내 모른 척 하고 있었던 건 역시 비효율적 활동을 자체 검열하고 있는 내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독서에 관한 이야기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어떤 태도로 삶을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화두를 던져주는 고마운 작품이습니다.
인상적인 문장들이 많아 읽을 때마다 우러나는 맛이 있었고
전체적인 구성도 불필요한 부분 없이 간결하여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분량의 압박이 없었더라면) 주인공이 반과 함께 책을 읽으며 독서의 기쁨을 느끼게 되는 과정이 더 구체적으로 묘사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랬더라면 이후 정부에 발각되어 책과 기억이 모두 소거되는 부분이 더 극적으로 큰 울림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독서 욕구를 일깨워 준 작가에게 고마운 마음 전하며 수상을 축하합니다!